남촌교회 2026년 2월 1일 주일1부예배
여호수아 4장 1절~9절
1. 소비주의 시대와 신앙: 우리가 돈이 지배하는 시대를 살다 보니까 사람들의 주의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배금주의도 있고 물질만능주의도 있고, 또 그러다 보니까 생겨난 용어가 하나 있어요. '소비주의'다. 여러분, 물건을 사고 기타 등등 여러 사는 것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그냥 소비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고 필요해서 사는 게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데도 소비를 통해서 만족을 얻기 때문에 다 그냥 필요 없는데도 사고, 또 사고... 그래서 쌓여 가는 것은 쿠팡 상자만 막 쌓여 가고. 그게 물건에서 끝나느냐, 그게 사람에게도 같이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이게 사람의 경험의 깊이가 아니라 자극의 강도를 높여 갑니다. 또 사람도 그냥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사용자'로 취급을 하고, 관계도 상품이 됩니다. 그리고 또한 소비주의는 기다림과 기억을 불필요하게 만듭니다. 기억하기 싫어요. 또 새로운 거 오면 되니까. 옛날에는 텔레비전 하나 있으면 그 하나 가지고 수많은 추억과 기억이 다 연결되어 있다, 이 말이에요. 근데 요즘에는 새로운 거 나오면 옛날 쓰던 거 그냥 갖다 버리는 거, 여러분 일도 아닙니다. 왜요? 내 기억관 상관없어요.
그리고 이게 더 나아가서는 우리 영, 신앙에도 영향을 미쳐요. 그래서 신앙마저도 체험 상품으로 바꿉니다. 예를 들면 설교학을 배울 때 이런 용어가 있어요. "설교를 소비한다." 여러분 가운데 유튜브를 통해 하루 종일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이 사람, 저 사람 막... 그건 설교를 듣는 게 아니라 설교를 소비하는 겁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겁니까? 살아내려고 하나님 말씀을 듣는 거지, 살아내지 않고 그냥 내 귀만 즐겁게 하기 위해서 듣는다, 그러면 그건 소비하는 거예요.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드려서 나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고, 그냥 '나 예배드렸어. 오늘 또 뭐 찬양대 목사님 기타 등등 예배, 아 오늘 감동적이고 감격적이었어.' 그렇게 끝낸다 그러면 그것도 예배 소비하는 거라고요. 그게 소비주의에서 우리 가운데 쭉 들어와 있는 겁니다.
2. 예배의 의미 그런 의미에서 사랑하는 우리 남촌의 성도 여러분, 2026년 오늘 2월 1일. 벌써 시간이 정말 빠릅니다. 송구영신예배 드린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1일이야. 그러면 아직도 처음에 있으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가 지금 예배를 소비하는지, 신앙도 소비하는지, 하나님 말씀도 소비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예배를 통해 나를 변화시키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있고 내가 하나님을 경험함으로써 더 나은 인생으로 가고 있는지 한번 잘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3. 요단강 도하와 열두 돌의 의미: 오늘 본문에 보면 여호수아 3장, 4장은 요단강을 건너가는 이야기거든요. 근데 건너가는 데 오늘 말씀 1절, 2절, 3절을 여러분이 다시 보시면 이렇게 돼 있죠. "그 모든 백성이 요단 건너가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백성의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두를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 밤 너희가 유숙할 그곳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
성경 읽다 보면 돌을 쌓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등산하다가 누군가 돌탑을 쌓아놨다, 돌을 올리십니까 안 올리십니까? 우리가 장난삼아 올리기도 하잖아요. 성경 읽다 보면 야곱이 하나님 만나고 벧엘이라고 돌을 쌓았잖아요. 모세도 열두 돌을 택해서 돌을 쌓기도 하고, 사무엘도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고 돌을 쌓고 에벤에셀이라 그랬잖아요.
근데 앞에 말씀드렸던 사람들과 오늘 이 본문의 돌 쌓는 내용이 좀 다른 게 뭐냐. 앞의 사람들은 은혜받아서 자기가 돌을 쌓은 거고, 오늘 4장 1절은 누가 명령하셨습니까?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다 건넌 다음에 너무 좋아서 "야, 이거 내가 기념을 해야 되겠다" 해서 열두 돌을 쌓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야, 열두 사람을 택하고 야, 열두 돌을 택해서 나 준비해라." 이건 하나님께서 어쩌면 오늘 용어로 하면 '하나님의 기적을 소비하지 말고 야, 너 기억해라'는 거예요.
4. 가장 깊은 곳, 두려움의 자리에서 가져온 돌: 지금 요단강이 멈춰 있습니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지나가고 언약궤가 다시 컴백을 하면 다시 물이 차서 요단강이 다 채워지겠죠. 지금 요단을 도하 할 때 요단강이 가장 범람할 때입니다. 가장 물이 많을 때. 우리 하나님은 일부러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그냥 물이 없을 때 그냥 지나가면 되는 거 아니야? 근데 물이 가장 많을 때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고 물을 멈추게 하시고 요단강을 마르게 하사 그곳으로 지나가게 하셨거든요.
근데 물이 덮여버려 봐요. 사람은 잘 잊어버린다, 잘 기억한다? 여러분하고 저하고 잘 잊어버리잖아요. 근데 하나님이 나한테 좀 서운하게 하는 것은 잘 기억한다? 잘 기억하죠. 근데 하나님이 우리한테 베풀어준 많은 좋은 것들에 대해서는 그때 한 며칠 지나가면 다 잊어버리고 또 힘든 일 생기면 막 그건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에게 서운하다고 얘기하는 게 우리 인간의 본성이거든요.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 잊어버리지 말라고.
그래서 다시 2절과 3절에 보면 백성의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해서 그 사람들이 돌을 가져오게 한다. 여기 의미가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통해 열두 지파를 모두 참여시키는 이유는 은혜를 개인의 체험으로 축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예배라는 용어는 공동체적인 용어입니다. 한 사람에게 쓰여지는 용어라고 할 수 없어요.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나와서 모두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함께 성찬을 나누고 이게 예배.
지금 왜 열두 지파 중에서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느냐. 은혜는 개인의 체험이 아니라 모두의 체험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모두가 건넜다는 공동체 정체성을 남기기 위해서. 그리고 여러분, 그러면 또 이럴 수도 있잖아요. 힘 있는 뭐 몇 지파만 뽑아가지고 "야, 돌 택해 와라. 욱 쌓아라." 할 수 있잖아요. 그게 이 다음에 어, 그게 안 뽑힌 어, 다른 지파 자녀들이 "왜 우리 지파는 왜 거기 참여 안 했어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으니까 다음 세대에 편파 없는 기억을 남기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고요.
또 여호수아만을 기념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새롭게 아, 쏘쏘 기타 등등 다 보시겠지만 저는 목사님들이 나와서 목사의 신앙을 간증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성경을 읽어보면 특히 구약 성경은 제사장의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러분이 잘 기억하는 사람들은 일반 평신도예요. 요셉, 야곱, 이삭. 여러분 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무슨 목사들입니까? 아니에요. 일반 성도들이라고요. 그들이 하나님 만난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정말로 삶의 운동장에서 뛰는 사람들은 목사가 아니라 누구이다? 성도이다, 이런 성도. 저는 교회에만 계속 있는 사람이고 여러분은 어디에 있는 사람들입니까? 교회만 계속 있습니까? 그건 아니잖아요. 여러분은 삶의 자리에서 진짜 신앙의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삶의 자리에서 경험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뭐 목사님들이 나와서 뭐 하나님 만났다 이런 얘기들은 제가 봤을 때 썩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만난 이야기가 여러분을 진짜로 살려내는 거지, 뭐 여러분 뭐 목사가 세상에 나가서 여러분 어떤 사람과 싸웁니까? 예. 아니면 뭐 사업을 해가지고 여러분 제가 뭐 뭘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목사님들도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요? 신앙의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을 일반 성도님들에게만
그런 의미에서 자, 여기에 정말 중요한 건 뭐냐. 목사를 기념하기 위해서, 여호수아를 기념하기 위한 게 아니라 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남기기 위해서 열두 지파에서 한 명씩 택해 가지고 돌을 세우게 한다.
근데 오늘 본문을 보면 빨리 읽으면 사람들이 놓쳐버리는 숨겨져 있는 보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오늘 3절부터 8절을 다시 한번 우리 보시면,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두를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 밤 너희가 유숙할 그곳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 여러분, 열두 돌을 택해 가져와야 되는데 어디서 가져오느냐. 성경을 다시 3절을 읽어볼게요. 시작.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두를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 밤 너희가 유숙할 그곳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
자, 그냥 요단강 주변에 있는 돌 그냥 택해 가지고 가져오면 되는 거 아니에요? 편안하게? 근데 하나님이 뭐라고 명령하셨느냐. 지금 요단강 한가운데, 지금 물이 멈춰 있어요. 그러면 땅이 말라져 있어요. 상상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제일 가운데는 그 강에서 제일 깊은 곳이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제사장이 언약궤가 거기에 딱 서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곳에 가서 열두 돌을 택해 가져오라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잘 묵상해야 됩니다. 아 그러면 한번 우리가 상상력을 한번 동원해 볼게요. 근데 왜 하나님께서 아 주변에 있는 돌 열두 개 택해 가지고 나중에 길갈에다가 열두 돌을 딱 세운단 말이에요. 그러면 되는데 왜 굳이 요단강 한가운데 가서 돌 열두 개를 선택하라고 했을까.
여러분이 그 요단강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라고 한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물이 막 막혀 있지만, 언제가는 물이 흘러요. 댐이 무너질 때 물이 벽처럼 딱 있다가 확 내려오는 그 찰나의 순간... 처음에는 벽처럼 딱 서 있어요. 정말. 근데 딱 무너진 순간에 그 벽의 물이 확 내려오는 거예요. 그러면 그렇게 물이 확 쏟아져 내린다면, 요단강 강가 끝에서 돌을 주워온다 그러면 뭐가 무섭겠어요. 근데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그러면 사실 이게 쉬운 게 아니거든요. 사실 위험을 무릅쓰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한가운데라는 건 뭐냐. 가장 깊은 곳이고, 또 하나 더 따져보면 가장 두려움이 많은 곳이고, 또 하나는 뭐냐 가장 위험한 곳이다. 거기서 돌을 가져와라.
5. 고난 가운데 함께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 이 말씀을 가지고 오늘 잘 묵상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그냥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져와서 기념으로 가지고 있는 돌이 평범한 돌이 아니라 가장 깊은 곳, 가장 위험한 곳, 가장 두려웠던 그곳에서 그 돌을 가져오라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이게 기억에 남는 거예요. 여러분이 지나왔던 인생을 잘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그날 그날은 그날처럼 다 지나갔어요. 맞죠? 인생에 365일이 있는데 여러분 기억하는 날은 무슨 날이에요? 엄청 예를 들면 로또가 터졌다, 기억하겠죠. 사고가 났다, 기억하죠. 그러면 평범하게 지나갔다? 기억 못 합니다. 기억하는 건 뭐냐, 정말 좋았던지 정말 힘들고 아프고 여러분이 정말로 고통 가운데 있었던지 그 둘 중에 기억을 하는 거거든요.
근데 좋았던 날을 기억하는 것은 그건 우리에게 사실 뭐 치명상을 주거나 그러지 않아요. 그건 좋은 거니까. 근데 치명상을 주는 건 뭐냐. 힘들고 어렵고 위험하고 두려웠던 거거든요. 근데 거기서 내가 어떻게 했냐에 따라서 인생은 달라지는 겁니다. 제가 뭐 얼마 살지 않았지만 제가 내 생을 살아온 것을 잘 되돌아봤을 때 좋았던 날도 있지만, 힘들었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인생의 길은 달라지는 거더라고요. 그때 요걸 택하느냐 그때 요걸 택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색깔은 달라진다.
지금 하나님께서 가장 깊은 곳, 두려운 곳, 위험한 곳에서 돌을 택하라고 하는 건 뭐냐면 "야, 너 가장 깊은 곳에 있을 때, 너 가장 힘들 때, 너 위험하게 있을 때, 그때 누가 너를 건져줬냐" 이 말이에요. 누구라고요? 하나님이 건져 주셨다는 거예요. 그걸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서 열두 돌을 택하라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 2026년을 살아가고 계신데 사실 쉽지가 않잖아요. 힘들고 어려우신 분들이 더 많더라고요. 자 그러면 여러분, 오늘 요 말씀을 잘 되돌아보면서 내가 지금 요단 한가운데 가장 깊은 곳, 두려운 곳, 위험한 곳에 있다 그러면은 여러분 여기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서 있었거든요. 무슨 얘기입니까? 그곳에 누가 계셨다? 하나님이 계셨다는 거예요. 그곳에 누가 계셨냐면 하나님이 계셨다. 그걸 잘 기억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자 그래 가지고 돌을 택해 가지고 다시 오늘 본문 자 되돌아가셔서 4절부터 우리 8절을 다시 읽어 보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준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의 수를 따라 요단 가운데서 돌 열두를 택하여 자기들이 유숙할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에 두었더라."
자,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열두 지파의 대표 한 사람씩 나와서 요단 한가운데 가서 돌을 어깨에 메고 나왔습니다. 자 그러면 나중에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오늘 본문 19절부터 24절을 다시 보시면, 여호수아 4장 19절부터 24절.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첫째 달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 경계 길갈에 진 치매 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너희는 너희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여기에 분명히 길갈에다가 열두 지파가 가지고 있던 돌을 다 모아서 열두 돌을 딱 세웁니다. 그리고 9절 다시 한번 보시면 9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에 있더라." 그러니까 두 개를 세운 거예요. 요단 한가운데도 열두 돌을 여호수아가 딱 세우고, 이스라엘 지파의 열두 지파의 한 사람씩 가져간 그 돌들을 모아서 길갈에다가 열두 돌 기념탑을 세운 거예요.
자 그러면 왜 그렇게 한 것이입니까? 그럼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냥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19절부터 24절까지 제일 많이 나오는 용어가 '건너가게 하셨다'는 말이에요. 너희 힘으로 건너온 게 아니라 누가 건너가게 하셨다? 하나님이 건너가게 하셨다. 요단을 건너가게 하셨다. 이것을 기억하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다음에 후손들이 "이 돌들은 무슨 의미입니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가 야 요단강을 주님의 손으로 넘어왔다라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 이 열두 돌을 쌓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두 가지죠. 하나는 우리 이스라엘 백성과 다음 세대에 기억하기 위해서.
아까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자, 우리 인생은 잘 잊어버린다. 예. 하나님의 기적을 잘 잊어버린다. 아까 이제 요단강이 다시 원위치로 되돌아가면 물론 여호수아가 쌓은 열두 돌도 아마 물에 잠겨버렸을 거예요. 예. 그렇지만 길갈에 세워져 있는 열두 돌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 우리가 요단강을 주님의 도움으로 건너왔지 않느냐." 원래 히브리라는 뜻이 건너온 사람의 뜻입니다. 히브리라고 하는 뜻이 뭐냐, 어디를 건너왔다 이 말이에요. 자 그러면 이제 요단을 건너왔다는 건 뭐냐, 이제는 광야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시작이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 이제는 모세의 시대가 아니라 여호수아의 시대으로 넘어간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로 가나안 정복을 통해서 실현된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사실 요단강을 건너간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사랑하는 우리 남촌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 사람들도 돌탑을 잘 쌓습니다. 산에 가보면은 다 중간중간에 다 돌탑이 쌓여 있어요. 그 사람들은 왜 돌탑을 쌓을까요? 아마 그럴 겁니다. 물론 의미는 딱히 소원을 빌겠죠. 근데 그건 자기들이 쌓은 거예요. 근데 오늘 여호수아 4장에 나오는 돌탑은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셔서 어쩌면 하나님이 쌓으라고 명령하신 겁니다. 인생이 먼저 주도한 것이 아니라 누가 먼저 주도했다? 하나님이 주도했다. 그 의미는 뭐냐. 내가 지금 야, 너희들이 나의 어 능력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요단강을 건너왔는데 그걸 잊어버리지 말라는 거예요. 기억하라 이 말이에요. 또 이제는 여러분 요단강 건너와서 실제로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군인들이 아닙니다. 그냥 여러분 사실 애굽 땅에서 나온 노예 집단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근데 그 사람들이 무슨 전쟁을 하겠어요? 사실은 나중에 우리가 여호수아를 쭉 읽어보면 미리 다 그 가나안 족속들은 사실 성을 쌓고 여러분 뭐 어 청동기를 준비하고 이런 사람들이었는데 어떻게 애굽 노예 집단이 그들을 이길 수 있습니까? 사실 전쟁도 누가 하신다? 하나님이 하시는 거거든요. 예. 그런 의미에서 자 요단강도 나의 도움으로 건너왔고, 실제로 홍해도 나의 도움으로 건너왔고, 이스라엘 광야도 나의 도움으로 건너왔고, 요단강도 나의 도움으로 건너왔고, 이 땅을 정복하는 것도 누가 하신다? 하나님이 하신다. 예. 그런 의미에서 자.
사랑하는 남촌의 성도 여러분, 그러면 신약 성경으로 딱 넘어오면 우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서 두 가지 상징물을 허락하셨어요. 그 하나가 뭐냐, 십자가입니다. 그렇죠. 십자가라고요. 그러니까 여러분 십자가를 잘 기억하시라고요. 예. 그게 신앙을 소비하지 않고 늘 십자가를 묵상할 때 그게 여러분 기억되는 거예요. 또 하나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성찬입니다. 성찬. 그러니까 십자가와 성찬이 사실은요 신앙을 소비하지 않도록 기억하도록 우리 하나님께서 신약 시대 이후에 우리에게 남겨주신 어쩌면 열두 돌의 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자, 제가 여러분에게 한번 숙제를 내어 드리겠습니다. 자, 우리도 여러분 예배를 드리고 이제는 뭐 유튜브라든지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 교회 방송이 발달하다 보니까, 또 여러분 테레비 켜면 뭐 CBS, CTS도 있고 여러 기독교 방송이 있다 보니까, 좋은 점은 뭐냐. 여러 좋은 설교에 기독교에 여러 가지에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아졌지만, 그와 더불어서 폐해는 뭐냐. 천천히 기억하고 향유하는 것은 사라지고 소비만 발달해졌다는 거예요. 예.
옛날에 여러분 할머니 우리 할아버지 우리 어머니 세대는 유튜브가 어디 있습니까? 그냥 목사님 말씀을 딱 듣고 내가 아 저거 살아내야지 했잖아요. 근데 오늘 사람들은 한번 목사님 말씀을 한번 들어보고 난 다음에 내가 은혜 받으면 그때 내 할게. 예. 순종이 취향이 되어버렸다 이 말이에요. 그냥 하나님 말씀이라면, 여러분 그 목사님이 설교를 잘하든 못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 있어요? 예.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 말씀이라면 우리가 순종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근데요, 순종도 취향이 됐어요. 내가 들어본 다음에 감동이 되고 은혜가 되면 내가 그때 하고, 은혜가 될 때까지 나는 참는다, 안 한다. 예. 그러면은 그게 소비주의에 빠져 있다 이 말이죠. 예. 그런 측면에서 제가 딱 한 가지만 여러분들에게 꼭 말씀드리겠습니다.
자,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꼭 여러분 수첩에다가 꼭 기록하시기 바래요. 제가 아는 목사님이 여수의 큰 교회 담임 목사님으로 가셨어요. 갔더니 교인들이 뭘 하는지 아세요? 그 앞에 계셨던 원로 목사님이 다 설교를 기록하도록 훈련을 시켜 놨더래요. 예. 그래가지고 그러면 훈련을 받은 대로 새로운 목사님 왔습니다. 설교를 기록할까요 기록하지 않을까요? 다 기록하는 거예요. 새벽에도 기록하고 수요일날도 기록하고 주일날도 기록하고. 그러니까 이 목사님이 죽겠대요. 왜요? 아 기록을 안 하면 좀 옛날에 했던 것도 할 수 있는데 다 기록을 하니까 힘들어서 죽겠대. 예. 그 중요한 건 뭐냐, 어쨌든 원로 목사님이 말씀을 기록하게 해서 훈련을 시켜 가지고 다 기록한 걸 한번 더 보고, 예, 물론 안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기록한 것을 한 번 더 보면서 하나님 말씀을 기억한다. 그래서 그 교회가 여러분 편안합니까? 또 교회가 부흥하고 부흥해서 지금 여수에서 두 번째로 큰 교회가 됐어요. 어. 놀라지도 않으시네. 예.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큐티를 하든 뭘 하든 여러분 노트에다가 꼭 하나님 말씀을 기억해라.
내가 김양재 목사님 강의를 한번 듣다가 내가 울었던 적이 있어요. 그 김양재 목사님은 원래 예수를 어 잘 믿다가 여러분 뭐 서울대 음대 나와가지고 하여튼 간에 어디 시집을 갔는데 하여튼 그 시댁에서는 도대체 못 나가게 하는 분이야. 어쨌든 어 어머님이 늘 새벽에 갔다 와서 큐티한 노트가 벽 한 벽에 이렇게 쌓여 있었는데 자기가 다 갖다 버렸다는 거야. 근데 자기가 목사가 된 다음에 은혜 받은 다음에 가장 후회가 되는 게 뭐냐. 엄마 큐티 노트를 다 갖다 버렸다는 거지. 그때 그 노트가 있었으면 엄마가 무슨 말씀을 가지고 묵상하고 하나님하고 어떤 대화를 했을까 다 볼 수 있었을 텐데, 그걸 다 갖다 버렸다는 거야. 그래가지고 자기가 엄청난 고난과 힘든 일을 당했다는 거죠. 그래서 눈물을 흘리면서 얘기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무엇을 느꼈냐면, 딴 게 아니라. 여러분 다음에 우리가 세상을 떠난다 합시다. 그러면 자녀들이 어떻게 여러분하고 어 소통하고 교제를 나눌까요? 나는 천국 갔는데? 안 되잖아요. 기록물이거든요. 여러분이 남겨 놓은 기록물이 그 자녀와 소통하는 도구가 되는 거거든요.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겁니까? 성경을 통해서 소통하기 위해서. 그래서 꼭 지금부터라도 글을 잘 쓰고 못 쓰고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 해서 몇 자를 계속 남겨서 계속 노트에 적어가시라고요. 세월이 흐른 다음에 그게 자녀에게 물려주는 가장 큰 선물이 된다 그러면, 세월이 지난 다음에 우리 자녀들이 "아 우리 엄마 아빠는 신앙을 소비하지 않았구나.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살아갔구나."
그래서 아까 또 다음 단계로 딱 넘어갔다 그랬죠. 다음 단계로 건너가는 사람은 신앙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앙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 다음 단계로 잘 건너가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소비주의의 영향을 받아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소비하며 말씀을 듣고 흘려보내고 기도를 위로로만 사용하고 신앙을 순간적인 감정으로 지나가게 했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말씀을 통해 우리를 다시 부르시는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아무 돌이나 택하라 하지 않으시고 요단강 한가운데 가장 깊고 가장 위험하고 가장 두려웠던 자리에서 돌을 택하라 하신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게 하옵소서. 그 자리는 우리가 강에서 버틴 자리가 아니라 언약궤가 함께 계셔서 우뚝 설 수 있었던 자리였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 인생에도 깊은 요단강 같은 시간이 있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았고 무너질 것 같았고 도망치고 싶었던 자리들이 있었습니다. 근데 돌이켜 보니 그 자리에도 주님은 계셨고 우리를 붙드시고 끝내 서게 하셨음을 오늘 기억하게 하옵소서. 길갈에 세워진 열두 돌, 요단강 한가운데 세워진 열두 돌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소비에 삼켜지지 않게 하시고 늘 하나님의 기적,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이 기억을 통해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도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함께하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전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그들이 걷는 모든 길 위에 새로운 기억의 돌들이 하나 둘 세워지게 하시고 그 돌들이 그들의 믿음을 지탱하는 증거가 되게 하옵소서. 모든 말씀 우리에게 십자가와 성찬이라는 새로운 기억의 돌을 허락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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